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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중화인민공화국

貳仟拾肆年 捌月 參日 (2/2)

сигнальный 2016. 6. 6. 15:51



밥먹고 좀 쉴겸 가본 국가도서관.


국립도서관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2500만여권의 도서가 있다.






신관으로 향한다.





이용은 열람카드를 만들어야 할 수 있다.


그리고 큰 소지품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어 보관함에 맡기고 들어가야 한다.






위에서 바라본 열람실.


양은 이미 세계최강이니 질만 빡세게 올리면 중화사상의 세계는 다시 올 수도 있을거 같다.




도서관에서 좀 쉬고 간 곳은 연명원이다.


베이징대학교 바로 위.








원중지원, 세상 모든 정원중 가장 으뜸.


천안문 광장의 무려 8배 면적으로 이화원 따위는 가볍게 제낀다.


원명원은 성조 강희인황제가 아들인 세종 옹정헌황제에게 하사한 여름별장이다.


고종 건륭순황제때 장춘원, 만춘원이 추가로 만들어지면서 절정을 이루며


유럽에서 사람들을 끌어와 서양루까지 만든다.


얼마나 대단했는지 유럽에서도 예술좀 한다면 원명원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






석잔교.


원명원에는 무려 250교의 돌다리가 있었다지만 지금 이 석잔교만이 과거의 영광을 말해준다.


1860년 영프 연합군에 의해 청나라가 탈탈 털릴때 원명원이 그 대표적인 피해자인데


청나라 군대의 패주 루트가 이 원명원인게 화근이었다.


1860년 10월 18일 영프 연합군에 의해 보물들이 다 약탈된것은 물론


목조 건물을 다 불태우고 석조 건축물은 대포로 다 때려 부수었다.


얼마나 크고 오래 타올랐으면 천안문에서 불타는게 보였다고 기록에 남아있다.





한참을 걸어 원명원의 핵심인 서양루에 도착.








포 쏘는걸로 모자라 다이너마이트까지 붙여서 폭파시켰다고 하니...


나라가 힘이 없으면 이런꼴을 당한다.


그러기에 원명원의 서양루에 흩어진 잔해들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바가 매우크다.







1980년대 들어서 복원작업을 시작한 모양이지만 사료도 얼마 남아있지 않아 애를 먹는 모양이다.






서양루에서 유일하게 원형이 남아있는 곳은 미로같은 황화진이다.





폐관시간도 다가오고 원명원을 슬슬 떠난다.





베이징 마지막 저녁 식시인만큼 베이징의 상징인 카오야로.







서비스는 그닥 맘에 안들었지만 맛은 그래도 좋았다.





디저트로 마무리하고 동단지역의 야경을 보러 간다.





CCTV 본사를 비롯해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반짝거리는 마천루는 지금 중국의 모습이다.





가진게 넘쳐나서 주체를 못하는 1억명.


짐승보다도 못한 삶을 사는 사회 밑바닥의 농민공 3억.


그중간의 10억명의 인민. 전세계에 깔려있는 화교들까지.


앞으로 인류의 미래는 중화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커져가고 강해지는 중국을 보며 희망보다는 비관이 드는건 나만의 기우일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