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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중화인민공화국

貳仟拾肆年 漆月 參拾壹日

сигнальный 2016. 6. 5. 19:17

 

동쪽지역의 왕푸징다제쪽을 둘러본다.

 

'왕'의 칭호를 황제에게 하사받고 살던 친왕들이 살던 곳으로 전통적으로 명품을 팔던 거리.

 

중국이 강해지고 잘 살수록 공기는 더러워지고 쓰레기는 늘어나고 있다.

 

 

 

 

왕푸징다제를 북에서 남쪽으로 쭉 걸어가다 보면 둥탕이 나온다.

 

명 말기에 지어진 성당.

 

중화인민공화국이 시작되고 1989년이 되어서야 공산당 정부는 이곳에서의 미사를 허용한다.

 

 

 

 

쇼핑거리에 있는 베이징apm 안에있는 요시노야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

 

서쪽을 향해 걸어가서...

 

 

 

 

3년만에 찾아온 우먼(오문).

 

높이 37.95m, 두께 36m의 세계 최대의 문.

 

 

 

 

 

 

해자를 따라 중산공원으로 향한다.

 

 

 

 

 

원래는 사직단으로 자금성의 부속 건물중 하나였지만

 

쑨원의 유골을 잠시 모셔놨기에 쑨원의 호인 중산을 사용하게 되었다.

 

지금은 인민의 공원으로서 역할을 한다.

 

2014년은 중산공원이 개방된지 100년이 된 해였다.

 

 

 

 

 

자금성 옆에 있지만 등하불명이라고 한적했다.

 

그리고 나무는 물론 꽃이 잘 관리되어있어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보위화평 이라고 적혀있는 문을 지나면...

 

 

 

 

덩사오핑때 세워진 쑨원 동상이 보인다.

 

 

 

 

 

 

천안문광장으로 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인 이곳에 온 이유는 국기게양대에서의 하강식을 보기 위해서다.

 

자국민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도 많기 때문에 1시간 전에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아 둬야 한다.

 

빈부격차와 환경오염이 심각해지고 사회문제가 대두될수록 국가주의로 치닫고 있는 중국의 현실을 볼 수 있다.

 

(남예기 할 때는 아니지만...)

 

 

 

 

인민대회당.

 

 

 

 

중국 국가 박물관.

 

 

 

 

 

인민영웅기념비.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의 넋을 기리는 비 이지만

 

모순되게도 천안문 대학살 이후로 그 어떤 인민도 다가갈 수가 없다.

 

앞에는 '인민영웅영수불후'는 마오쩌둥의 필체고 뒤에는 저우언라이의 글이다.

 

 

 

 

인민영웅기념비 뒤로는 마오주석 기념당이 있다.

 

호치민도 그렇고 분명 본인은 우상화는 커녕 시체도 남기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건만...

 

가면 갈 수록 마오쩌둥의 찬양이 심해진다.

 

 

 

 

 

공안과 사진찍는 아이.

 

중화인민공화국만세 세계인민대단결만세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적인 문 앞에서

 

인민군이 자신들이 해방시켜야 할 인민들에게 총포를 겨눈지 15년.

 

정보는 통제되고 역사는 금기시된 지금 천안문 광장에서 일어난 그 때의 피바다의 흔적과 아비규환은 찾아볼 수 없다.

 

저 아이에게 펼쳐질 중국은 이제 어떤 모습이고 저 아이들이 또 이끌어갈 중국은 또 어떻게 될 것인가...

 

 

 

 

 

국기게양대 앞 뜨거운 바닥에 앉아 죽치고 기다린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슬슬 움직임이 보인다.

 

 

 

 

 

공안이 쫙 배치 된다.

 

 

 

 

셋팅 완료.

 

 

 

 

저 멀리 천안문 정문에 군인이 배치되면서 천안문 대로의 교통이 잠시 통제된다.

 

 

 

 

 

 

천안문 정문에서 행진해온 군인들이 하강식을 한다.

 

보폭 75cm, 분당 108걸음.

 

 

 

 

기가 내려온다.

 

주변에서 중국 인민들의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터진다.

 

 

 

 

국기가 내려오고 천안문 광장에서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광장은 다음날 국기게양식 때까지 폐쇄된다.

 

 

 

 

 

저녁밥은 훠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