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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슈케이엔 1620년, 히로시마의 영주 '아사노 나가아키라'가 중국 항저우의 서호를 본따 축소해서 만든 곳이다. 특이한점은 연못을 쭉 둘르는 길이 있다는 점. 어느 정원을 가던 그 당시 권력자들이 띵까띵까 놀고 마시는 곳은 꼭 있다. 히로시마 여기저기에 보이는 원폭 위령비. 6. 히로시마성 1589년, 주코쿠 지방의 권력자인 모리 테루모토 다이묘가 건설한 성으로 별명은 잉어성. 해자를 건너 성 안으로 가면 달랑 천수각만 남았는데 그 이유는 뻔한 내용. 공허한 성터는 이제 시민들의 쉼터로 사용되고 1958년에 원형복원된 천수각만이 그 역사의 흔적을 대신하고 있다. 천수각에서 본 히로시마 전경. 싹 쓸린 도시는 반백년이란 시간 동안 복구되었다.
성보러 들르는 곳. 그곳은 히메지. 히메지성. 1333년 히메지 지역의 영주 아키마스 노리무라가 처음 세우기 시작하여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의 사위인 이케다 테루마사, 혼다 타다마사와 함께 1581년 큐슈와 칸사이 지방 공략의 거점지로 삼기 위해 뜯어 고쳐 현재의 모습까지 전해지고 있다. 신기하게도 일본의 험악한 전란의 역사 속에서도 단 한번도 손상된적이 없었으며 세계 제 2차대전 당시에는 미군의 폭격으로 인한 성의 파괴를 막기 위해 히메지 지역의 전 주민이 새끼를 꼬아 숯으로 검게 만든 다음 성 전체를 덮어 폭격을 피했다. 위장술. 지붕양식이 본진인 나고야와는 달리 조선식인데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의 조선정벌이란 야심의 끈을 단 한시도 놓치 않기 위해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물거품이 되어 버렸지만....
쿄토. 일본이란 배가 예인선 없이 헤이안이라는 이름으로 혼자 나아가기 시작한 곳. 버스 교통을 이용하면 철도나 지하철만 고집하는것 보다 이동하기 편하다. 일일권을 적절히 이용하자. 쿄토는 고대때부터 계획도시로 설계 되었기에 삿포로의 선배다. 쿄토역을 중심으로 x-y축을 잡으면 여행하기 편하다. 마루타케, 에비스, 니, 오시, 오이케, 아메, 산, 로카쿠, 타코, 니시키, 시, 아야부, 타카, 마츠, 만, 고죠, 셋타 걸어가다 우오노타나, 로쿠죠 시치죠 거리를 넘어서, 하치죠 지나가면 도지 거리, 쿠죠를 큰길로 끝을 맺지요. 1. 토지 정식 명칭은 교오고코쿠지. 796년에 세워졌으며 1644년에 재건되었다. 일본에서 가장 높은 불탑(57m)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킨테츠 쿄토센을 이용하면 한정거장이면 되..
4. 킨카쿠지 금각사. 순금으로 도금된 누각이 워낙 유명해 킨카쿠지 이지만 본명은 로쿠온지다.아시카가 요시미츠 쇼군이 나이 37세에 통치권을 양도하고 성직에 입적하면서 1397년 세운 누각이다. 그리고 이 누각은 그가 죽은 후, 유언에 따라 로쿠온지라는 절이 되었다. 누각은 3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은 호스이인이라 하여 헤이안 시대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고,2층은 초온도라 하여 사무라이들의 취향을 반영하는 곳이다.마지막으로 3층은 비어있는 곳으로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있다.누각은 1950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30년동안 역사적 자료를 통하여 연구한 끝에 1987년에 다시 복원시켰다. 킨카쿠지를 둘러쌓고있는 교코치. 킨카쿠지 내부의 긴카센.아시카가 요시미츠 쇼군이 다도를 위해 사용했다는 물이 있는 연못이다..
나고야는 아이치현의 현청소재지다. 츄부에서 으뜸가는 도시로 칸토와 킨키를 연결하는 도시인데 관광객들한테는 규모만큼 주목 받지는 못한다.(성보고 돈가츠나 히츠마부시 먹으면 끝이라는 소리가 대놓고 나올 정도.)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출생 지역이기도 하다. 나고야성은 시청만 찾아가면 된다.나고야역에서 지하철로 환승 한번. 1. 나고야성 나고야성은 1612년 일본역사의 대표적 능구렁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건설해 도쿠가와 가문이 대대로 살아온곳이다. 세계 제 2차대전때 미군의 폭격으로 소실되었으나 1959년 다시 재건되었다. 이곳에는 유난히 까마귀가 많은데 까마귀는 한국에서는 흉조이지만 일본에서는 길조이다. 스미야구라. 성곽의 외곽에는 스미야구라가 있다. 태평양전쟁때 성의 서북, 서남, 동남쪽에 있..